희망촌교회

전체 메뉴 바로가기 로그인 바로가기

새벽기도설교

이전 페이지 이동 홈 화면 바로가기
고린도후서5;1~10
백종선 2020.11.20 조회 270

[성경본문] 고린도후서5 : 1 - 10 | 개역개정

  •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본문 / 고린도후서 5 : 1 ~ 10

 

성경은 사후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할까? 성경은 내세를 인정한다. 내세가 존재한다고 말씀한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장막 집은 우리 인간의 육신을 비유해서 표현한 말이다. 장막 집은 텐트, 천막을 말하는데 이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낡고 못쓰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신이 그렇다는 말이다. 인간의 육신은 영원한 거처가 될 수 없고, 무너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입고 있었던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하늘에 있다. 이 영원한 집이란 천국에서 입게 될 새 몸을 말한다. 그 몸은 지금의 육신처럼 병이 들거나 노쇠하거나 죽지 않는다. 그 몸은 영원하다.

고전 15장을 보면 여기에 대하여 좀 더 분명하게 말씀한다.

고전 15:42-44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게 될 때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하며..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다고 하였다.

성경은 내세가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한다. 이 사실은 예수님을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무덤에 장사되었다. 완전히 죽으셨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흘만에 다시 살아 부활하셨다. 이때 예수님은 새로운 몸, 영원한 몸,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셨다. 그 부활의 몸으로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로 가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도 그와 같이 부활할 것임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죽음 이후에 내세를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그 부활의 몸을 친히 제자들과 여인들, 그리고 500여 형제들에게 보여주셨다. 이 확실한 증거가 있기에 우리의 부활과 내세를 믿을 수 있다.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바울이 간절하게 사모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는 것이다. 영원한 나라, 천국을 사모하고 있다.

내세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바울과 같이 천국을 사모한다.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바울은 죽음 이후에 들어갈 천국을 사모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생활을 하기를 사모하고 있다. 2절을 보면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하늘의 처소를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는 말씀이다.

천국은 죽음 이후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다. 말씀이 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순간부터 천국은 시작되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그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세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내세를 진심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내세를 사모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내세에 대한 신앙이 희미해지면 우리의 믿음 생활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우리처럼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사모하였기에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세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기다림이 간절해야 한다. 우리 희망촌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내세를 사모하며 천국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덧입기를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그 신앙이 우리를 신실한 신앙인의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9절을 보면 천국을 사모하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9절을 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사도 바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1:19절을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다.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힘썼다. 이를 보면 바울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기쁨을 얻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한다.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바로 이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그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주님으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예배를 드릴 때, 봉사를 할 때, 혼자 있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면서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댓글 0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