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시편55:22)
- 백종선 2020.6.20 조회 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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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55 : 22 - 22 | 개역개정
-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성경 / 시편 55 : 22
제목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시편 55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55편 위에 작은 글씨로 ‘다윗의 마스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마스길’은 ‘교훈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깨달은 교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지은 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시행착오는 대부분 지식과 경험의 부족에서 옵니다. 몰라서 실수를 하고, 몰라서 잘못된 결정을 내립니다. 시행착오를 만회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교훈을 함께 공유하는 게 필요합니다. 다윗은 시편 55편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여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깨달은 교훈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 하나가 믿었던 사람, 가까이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여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예전엔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은 마주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텐데 가까운 사이였고 믿었던 사람이었기에 더 큰 상처가 되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겪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윗이 기록한 마스길을 통해 교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55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할 때 그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이 눈치채지 못하게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여 갑작스럽게 대규모의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압살롬은 이를 위해 몇 년간을 준비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에 있다가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정의를 베풀기를 원하노라”하며 그들이 절하면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고 그들이 가져온 송사를 잘 해결해 주는 등 최대한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압살롬은 이런 방식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하나씩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21절을 보면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고 합니다.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말을 잘합니다.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누구나 호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칼을 품고 있습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속을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은 그의 탁월한 말솜씨와 호의를 베푸는 방식으로 자기 사람을 만들어 자신의 세력을 넓혔고 준비가 다 되었을 때 계획했던 반역을 일으킵니다. 아버지에게는 헤브론에 제사 드리러 간다고 해놓고, 추종자들을 헤브론으로 집합시킨 후 반역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고, 급작스럽게 이런 일을 당하자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이 도망쳐 나오기에 급급했습니다. 다윗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습니다. 반역 사건이 일어난 것도 큰 충격이었겠지만 그 반역을 주도한 인물이 자기 아들이었고, 그의 최측근이었던 신복 ‘아히도벨’도 반역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에 그의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13,14절을 보면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벗으로 지냈던 사람입니다. 같이 국정을 의논하고, 같이 성전을 출입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를 향하여 칼을 빼 들고 반기를 들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본문 4,5절을 보면 다윗이 그때 자신의 심정이 어땠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마음이 심히 아팠다고 합니다. 죽음의 공포로 인해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마 심장이 크고 빠르게 박동하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풀리고, 정신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을 겁니다.
6~8절을 보면 다윗이 그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멀리 광야로 날아가서 그곳에 머물며 쉬고 싶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다윗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윗에게 날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개가 있어 광야로 피하였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반역의 세력에 넘어가게 될 것이고, 자신은 계속해서 숨을 곳을 찾아다녀야만 합니다. 노년에 이런 식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도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상황에 부딪치면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에서 일단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칩거하기도 하고, 멀리 해외로 여행을 떠나 은둔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회피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일시적으로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16,17절에서 다윗은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한다는 게 무엇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배신을 당하고, 반역을 당하면 분노가 일어나고,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감정으로 대응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되돌릴 수 없는 죄를 범합니다. 다윗은 감정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시편 55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1,2절에서 기도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기도문으로 시작한 이후에 자신이 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55편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시편 55편 구성에서 기도문을 먼저 올려놓은 것은 기도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55편 마지막에도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로 끝맺음합니다.
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모든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주 보았던 모습이 있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 싸우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블랙박스가 생긴 이후로 사고상황이 그대로 기록에 남아있기에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싸운다고 달라질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블랙박스보다 더 정확하십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까지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처한 상황을 다 알고 있습니다. 압살롬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직접 나서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9,20절에서 다윗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시리이다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배신하고, 언약을 어기는 자를 낮추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며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이 기도한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18절입니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다윗을 대적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벌떼같이 밀고 들어왔으나 하나님은 다윗의 생명을 지키시고, 반역을 일으켰던 압살롬이 최후를 맞게 하셨습니다. 삼하 18장에 이 장면이 나옵니다. 압살롬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피신한 다윗을 끝까지 추격하여 죽이려고 했다가 다윗을 지키는 수비대와 마주치게 되고 싸움 중에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결국 요압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본문 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으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선악을 판단하십니다. 의인을 지키시고 죄인을 벌하십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겪는 배신, 억울함,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십니다. 기도가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물러나야 합니다. 내 방법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짐을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평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다가 어떤 긴박한 상황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을까요? 평소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특별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다윗은 ‘저녁 아침 정오’ 하루 세 번 기도합니다. 단순한 세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루 세 번 기도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하루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는 위협을 받았음에도 기도를 중단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 기도했습니다. 그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하루에 세 번 기도해 보십시오. 그게 쉬울까요? 만약 매일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분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어도 기도의 흉내는 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 하는 기도는 외식에 불과합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을 때 인간적인 방법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어떤 기도였습니까? 예수님은 대적이 보낸 자들이 자신을 잡으러 올 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겪을 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큰 슬픔에 잠기시고 그 마음이 심히 괴로우셨습니다. 십자가의 쓴 잔이 지나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도를 드렸기에 예수님은 구원의 놀라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의 본입니다.
예수님은 대적들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느꼈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기도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응답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불의를 눈감아 주지 않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의인을 지키시고, 죄인을 심판하십니다. 내가 불의를 행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책망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하나님의 편, 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내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고,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면 죄인은 기도할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죄인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내 죄를 깨우쳐 주시고, 죄에 대해 아픔을 느끼게 하시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의인의 자리에 서게 하십니다.
기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의 유익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다급한 일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 모든 짐을 맡기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상에서 기도생활을 하십니까?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습니까? 최근 새벽기도에 15~17분이 나옵니다. 평소보다 많은 편입니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기도의 용사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아직 기도가 생활화되지 않는 분들은 기도의 훈련을 쌓아가십시오. 처음부터 기도를 잘할 수 없습니다. 기도가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실 기도는 노동입니다. 정신적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예민하게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피곤할 때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되면 기도가 잘 안 됩니다. 그러나 기도가 힘들어도 기도의 시간을 쌓아가다 보면 기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기도의 유익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붙들어 주시고, 평강으로 지키시고, 승리케 하여 주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희망촌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이와 같은 기도를 드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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